송나라 때 소식(蘇軾)이 아우 소철(蘇轍)에게 화답한 시는 이렇다.
"인생길 이르는 곳 무엇과 비슷한가. 기러기가 눈 진흙을 밟는 것과 흡사하네.
진흙 위에 우연히 발자국 남았어도, 날아가면 어이 다시 동서를 헤아리랴.
노승은 이미 죽어 새 탑이 되어 섰고, 벽 무너져 전에 쓴 시 찾아볼 길이 없네.
지난날 험하던 길 여태 기억나는가? 길은 멀고 사람 지쳐 노새마저 울어댔지
.(人生到處知何似, 應似飛鴻蹈雪泥. 泥上偶然留指爪,
鴻飛那復計東西. 老僧已死成新塔,壞壁無由見舊題.
往日崎嶇君記否, 路長人困蹇驢嘶.)"
시의 뜻은 이렇다.
사람의 한 생은 기러기가 눈 쌓인 진흙밭에 잠깐 내려앉아 발자국을 남기는 것과 같다.
기러기는 다시금 후루룩 날아갔다. 어디로 갔는가? 알 수가 없다. 예전 우리 형제가 이곳을 지나다가 함께 묵은 일이 있었다.
그때 우리를 맞아주던 노승은 그 사이에 세상을 떠나 새 탑에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예전 절집 벽에 적어둔 시는 벽이 다 무너져 이제 와 찾을 길이 없다. 분명히 내 손으로 적었건만 무너진 벽과 함께 흙으로 돌아갔다.
노승은 육신을 허물고 탑 속으로 들어갔다. 틀림없이 있었지만 어디에도 없다. 여보게 아우님! 그 가파르던 산길을 기억하는가? 길은 끝없이 길고,
사람은 지쳤는데, 절룩거리는 노새마저 배가 고프다며 울어대던 그 길 말일세. 이제 그 기억만 남았네. 그 안타깝던 마음만 이렇게 남았네.
설니홍조(雪泥鴻爪)란 말이 이 시에서 나왔다.
눈 진흙 위의 기러기 발자국이란 말이다. 분명히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 자취만 남고 실체는 없다.
한 해를 바쁘게 달려왔다. 일생을 숨 가쁘게 살아왔다. 여기저기 어지러이 뒤섞인 발자국 속에는 내 것도 있겠지.
아웅다웅 옥신각신 다투며 살았다. 한번 밀리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사생결단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보니 덧없다. 발자국만 남기고 기러기는 어디 갔나?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들이 오늘도 '사는 해 백년을 못 채우면서,
언제나 천년 근심 지닌 채 산다(生年不滿百, 常懷千歲憂)'.
90대 노부부는 세밑의 구세군 냄비에 2억원을 넣고 자취를 감췄다.
천년만년 절대 권력을 누릴 것 같던 독재자는 심근경색으로 돌연히 세상을 떴다.
누구나 죽는데 그것을 모른다. 자취가 남은들 어디서 찾는가? 눈이 녹으면 그 자취마저 찾을 길이 없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