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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의 사망뉴스

酒樂人 2011. 12. 21. 19:43

1918년 레닌은 볼셰비키를 반대하는 여자가 쏜 총에 맞아 간신히 목숨만 건졌다. 레닌은 그후 간간이 발작을 일으키다 1924년 1월 쉰넷에 사망했다. 소련 공산당은 과로와 동맥경화증에 의한 진행성 마비가 사인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서방 언론들은 "레닌이 신경 매독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그가 1902년 파리 사창가에서 걸린 매독균 때문에 평생 뇌질환을 앓았다는 얘기다.

▶1953년 2월 28일 스탈린은 흐루쇼프를 비롯한 정치국원들과 이튿날 새벽까지 만찬을 즐겼다. 정치국원들이 다 집으로 간 뒤 1일 오후 경호원들은 침실에서 쓰러진 스탈린을 발견했다. 스탈린은 나흘 동안 의식을 잃었다가 밤 10시쯤 정치국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졌다. 의료진이 마지막 인공호흡을 하자 흐루쇼프는 "그만해, 그는 이미 죽었단 말이야"라고 소리쳤다. 소련 공산당은 스탈린 사망 6시간 뒤 새벽 4시에 "뇌일혈로 숨졌다"고 발표했다.

▶소련은 1982년 서기장 브레즈네프가 죽었을 때도 26시간이 지난 이튿날 아침에야 사망을 공식 발표했다. 1976년 9월 마오쩌둥(毛澤東)이 여든셋에 죽었을 때도 16시간 뒤 사망 사실이 공개됐다. 공산국가에서 흔히 독재자 사망 발표가 늦춰지는 것은 권력자들이 후계를 둘러싸고 막후 협상을 벌이기 때문이다. 스탈린 사망 발표도 흐루쇼프가 실권자였던 베리야 KGB 국장을 제거하기 위해 다른 정치국원들과 협의하느라 지연됐다.

▶1994년 7월 9일 낮 12시 북한 중앙방송은 김일성이 8일 새벽 2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고 전했다. 북한 방송은 사망을 발표한 뒤 한 시간 동안 혁명가요와 김정일 찬양가요만 내보냈다. 오후 1시부터는 '수령님 따라 삼천리'라는 장송곡을 방송했다. TV는 평양 시민 10만여명이 만수대 김일성 동상 앞에 몰려가 통곡하는 장면도 방영했다.

▶소설 '광장'의 작가 최인훈은 김일성 사후 조선일보에 쓴 칼럼에서 "울먹이는 소리로 독재자의 죽음을 알리는 북쪽 아나운서의 문화양식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고 했다. 북한방송은 김일성이 죽은 지 17년 만인 19일 낮 12시 김정일이 17일 오전 8시 30분 전용 열차 안에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공교롭게도 독재자 부자(父子)의 사인(死因)과 발표 시각, 울먹이는 아나운서까지 모두가 똑같다. 김정일이 죽은 뒤 사망 발표까지 51시간 30분 동안 북한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