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酒樂人 2010. 12. 10. 12:54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네가 끌었드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국도 섰지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넘어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분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이가

지심매던 그들이라 다 보고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짬도 모르고 끝도없이 내닫는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므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간다

아마도 봄신령이 지폈나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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