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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부자의 대화

酒樂人 2011. 11. 28. 11:00

 

정의와 공평 목말라하는 20~30대 갈망 이해하지만 50~60대도 불운한 세대, 부모봉양 책임져야 하는데 자기 노후는 자식에 기대 못해… 세대간 共感에서 출발해야

김대중 고문
"요즘 항간에는 부자 아빠와 가난한 아들 간의 세대충돌이 화두인 모양인데, 너희들이 성이 났다면 우리 세대도 골나기는 마찬가지다. 도대체 우리 세대가 너희들한테 무엇을 잘못했길래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과 불만이 크다는 말이냐?"

"아버지 세대에 대한 구체적인 원망이라기보다 지금 우리 세대가 처한 막다른 골목 신세와 좌절감, 구직(求職)의 문제, 미래가 보이지 않는 막막함 같은 것을 이해해 달라는 것입니다. 대학등록금이 한 해 1000만원에 육박하고 있어, 대학생 자녀를 둘 둔 가정은 초상집 분위기입니다. 10여년 전만 해도 과외와 아르바이트를 통해 보탤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나마도 별 따기입니다."

"그것은 우리 때도 마찬가지야. 그야말로 부잣집 말고 학비 벌어서 쓰지 않은 아버지 세대는 별로 없었다. 고생하며 크는 거지."

"대학 졸업했다고 해도 취직이 안 됩니다. 대학 다니면서 학원 다니고 자격증 따서 스펙을 쌓았지만 헛고생이었습니다."

"너희들 눈높이가 문제야. 지금 외국인 근로자가 20만명이 넘는데 그 일자리는 너희들이 걷어찬 일자리 아니냐? 일생을 걸 기술을 배우면 일을 찾을 수 있는데도 요즘 젊은이들은 '넥타이 맨 직장'만 찾는 것 아니냐?"

"아버지 말씀대로 어렵사리 취직해도 결혼에 따르는 집 마련은 더 어렵습니다. 요즘 개그 프로에서 '예쁜 집에서 살려면 89년 동안 숨만 쉬고 돈을 모으면 된다'는 얘기가 화제가 됐습니다. 집값이 비싸 전세를 알아보지만 그것도 만만치 않아 부모들의 도움 없이는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 세대도 어렵게 살았다. 나는 대학 졸업 후 군대 갈 때까지 한 방에 세 형제가 살며 하루 두 끼 먹을 때도 많았다. 결혼해서도 전세 살며 너희를 길렀다. 우리는 고생하면서도 너희를 너무 편하게 키워서인지 너희는 도무지 어려움을 견디는 훈련이 안 돼 있는 것 같다."

"사실 아버지 세대는 거의 모두가 가난하고 어렵게 살면서 입신양명을 향해 매진했지만 저희는 여기저기서 너무 많은 빈부의 차이를 보고 있습니다. 부자들과 그 부(富)를 상속한 젊은이들은 호사스럽게 살고 있습니다. 일한 것도 없이 수천억원씩 배당받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부자들이 잘 먹고 잘 입고 호강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박탈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그런 막막함이 '청춘 콘서트'에 가고 SNS로 주고받으면 해결되냐? 그런 문제가 박원순씨가 시장이 되고 안철수 교수가 정치에 나오면 해결되냐?"

"물론 그들이라고 해도 우리가 당하고 있는 구조적 문제들에 대한 해답은 줄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우리의 얘기를 들어주고 우리의 막막함에 공감하고 위로해줍니다. 이 정권과 기득권 세력들은 우리를 무시했습니다."

이것은 어느 60대 후반 아버지와 30대 아들 간에 실제로 있었던 대화다. 나 자신의 얘기일 수도 있고 모든 세대 간의 대화일 수도 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심각한 문제가 바로 세대 간의 간극이며 그 저변의 흐름이 정의와 공평(justice)임을 알게 된다. 카네기 재단의 데이비드 로스코프는 "동서 간 냉전이 끝났을 때, 우리는 (그 다음에) 문명 간 충돌이 발발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우리에게 닥친 것은 세대 간 충돌"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젊은 세대가 내놓은 화두는 '공평하게 사는 것'이다. 지금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위의 본질은 이제는 '자유'가 아니라 '정의'와 '공평한 삶'에 대한 절규라고 뉴욕타임스의 토머스 프리드먼은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세대 간 충돌은 또 다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오늘의 화두가 50~60대 어른과 20~30대 젊은이들의 충돌이라면, 내일의 심각한 세대 간 충돌은 노령인구 증가에 따른 사회적 비용 문제로 빚어질 것이다. 솔직히 말해 오늘의 50~60대는 불운한 세대다. 구시대(?)에서 물려받은 부모 봉양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으면서도 그들의 노후는 자식들에게 맡길 수 없는 과도기를 살고 있다.

이 엄청나고 폭발적인 문제를 당장에 풀 묘안은 없다. 다만 모든 세대가 서로 상대방의 문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갖는 것부터 시작할 수는 있다. 우선 어른 세대는 젊은 세대가 좌절과 고민을 안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어른들이 겪었던 어려운 과거를 젊은이들에게 그대로 대입하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도 어렵게 컸으니 너희도 겪어라'는 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을 그렇게 키운 것이 우리이기 때문이다. 기득권 세력이나 부자들은 '이긴 자가 모든 것을 갖는 것(winner takes all)'이 아니라 70%만 가져야 한다. 위정자도 마찬가지다. 부자들은 판자촌 옆에서 고기 구워 먹는 따위의 천박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제도권이 기득권을 지키려고 불법·탈법 행위를 마다하지 않고 비리·부정을 저지르면 젊은 세대 역시 탈(脫)헌법적으로 가기 마련이다. 그래야 우리는 젊은 세대에게 아무리 인터넷이 발전했어도 석 줄짜리 무책임한 글과 조롱으로 세상을 재단하려 들지 말 것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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