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회 돌아가는 것을 보니 태자당(太子黨) 사람들이 귀족계급이다.
대장정(大長征)에 참여하였던 공산당 원로의 자식과 손자들이 대를 이어 높은 자리를 차지하면서 중국의 파워 엘리트로 자리를 잡았다.
새로운 세습 귀족이다.
일본은 왕과 전국시대의 다이묘(大名) 집안들이 와해되지 않고 나름대로 맥을 이어오고 있다.
일본은 한국의 동학혁명이나 6·25 같은 사회 내부의 처절한 쟁기질이 없었던 것이다.
지난 동북 대지진 때 보여준 일본 사회의 침착성은 수백년간 내려온 윗물과 아랫물의 구분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싶다.
좋게 보면 질서정연이요, 나쁘게 보면 역동성이 없는 사회이다.
한국은 조선 사회가 망하면서 양반과 귀족이 철저히 사라졌다.
그러다가 근래에 새로운 귀족으로 대두한 집단이 재벌이다.
역사를 보면 단군 이래 5000년 만에 처음으로 우리 민족이 큰돈을 만져볼 수 있는 후천개벽(後天開闢)의 시운(時運)이 도래하였고,
이 시운을 타고 등장한 부자가 재벌이다. 나라의 대운이 온 셈이다.
이 대운을 앞에서 끌고 가는 집단이 바로 재벌이다.
한국은 총리나 장관을 지냈어도 그만두면 고향에 돌아가 후진 양성을 하는 것이 아니라,
퇴직 후에도 여전히 월급을 받기 위해 재벌 기업의 밑으로 들어가 굽실거리는 세상이 아닌가.
재벌의 영향이 이처럼 막강해진 만큼 재벌가의 2·3세들은 처신을 잘해야 한다.
조선조 부자 양반들이 어떻게 조심스럽게 처신했는지를 배워야 한다. 역사를 보라!
경주 최부자가 왜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고' '흉년에 논 사지 않고' '파장 때 물건 사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는지 말이다.
자기 돈 아깝게 여기지 않는 호인이라 그랬겠는가?
이렇게 처신하지 않았더라면 남인(南人) 집안이었던 최부자는 집권당인 노론(老論)으로부터 꼬투리를 잡혀 역적으로 몰리거나 재산을 몰수당했을 것이다.
조선 유교는 부자를 가만 놔두지 않는 종교였다.
소론(少論) 당수였던 논산의 명재(明齋) 윤증(尹拯)이 눈을 부라리면서
"우리 집안 윤씨는 서민들이 먹고사는 업종인 양잠(養蠶)을 절대로 하면 안 된다"고 엄명을 내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재벌 자제들이 '서민먹이'인 제과·라면·순대·두부까지 손대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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