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시

향수

酒樂人 2011. 1. 10. 12:04



 

 

 

 

 

 





 


 

  

황금빛 들녘... 

 

가을이 깊숙히 내려앉아 있는 농로(農路) 한켠에 자리잡은 사생회원들이

가을풍경을 화폭에 담아내기 시작하는 초가을의 보룡리는 그림처럼 곱습니다. 

  

 

벼메뚜기가 뛰어다니고 나비가 날아드는 시골 한적함 속에는

세월 풍파가 핥고 지나간 황토벽과 찢어진 지붕 틈새로 가을이 스며드니

머잖아 이 계절은 만추로 크게 달음박질 칠 것이 분명합니다.  

   

가을풍경으로 자리잡은  보룡리 마을에는 못다 터뜨린 알밤이 있고 

 

햇볕으로 더욱 매워질 태양초는 이 마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땀의 분신입니다.

 

눈부신 황금들녘을 뒤로한 채 사람의 키높이로 자라나 아직은

털어내지 않은 깻잎 사이로 계절 하나가 허브향기에 취해있고 

 

남국의 마지막 햇볕을 빨아들이려는 칸나에게는 짙은 기원이 배여나니

시골의 가을은 양철지붕 끝단을 타고 낙수처럼 청명하게 떨어집니다.  

  

     

 

시골풍경이 이 가을에 유달리 계절의 운치를 더 깊게 느낄 수 있는것은

결실이 주는 풍요로 넉넉해진 마음의 색으로 덮혀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 

  

  

 

그 옛날 어린시절 마당 한켠에서 자라나 담장을 타고 올라섰던 수세미가

이제는 시골 아니면 구경도 할 수 없는 귀한 식물로 변해버렸으니 애닮습니다.

 

수확의 계절 뒤에는 여름에 땀흘린 흔적이 반드시 있는 법입니다. 

 

빛바랜 농가의 모습에 화려한 채색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차라리 그 빛을 흑백으로 가두어 놓으니 오히려 깊은 질곡으로

까마득한 옛추억에서 향수 하나가 스멀거리듯 기어나옵니다.  

  

가을 햇살에 점점 더 붉게 타들어가는 고추의 탐스러움이 있고

거친 농부의 손으로 마감한 여름날의 땀흘린 수고를 뒤로 하고

지금은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는 농가의 흔적들이 오히려 포근합니다.   

    

가을이 지나는 길목에는 동토의 계절을 준비하는 농부의 지혜도 보입니다.

 

억만년의 세월을 두고 길들어졌을 토벽에 균열이 생겨나도 늘 그랬듯이

도시민에게는 또 다른 안식과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때로는 빛을 풀어놓아도 흑백으로 이분이 되니 가을은 흑백사진과 같은 것.

   

어린 송아지의 천진한 눈망울에도 가을색이 투영되기 시작하고

 

풀잎 끝단으로 옮겨다니는 빨간 고추잠자리의 짧은 동선에도

이 계절의 색감이 물씬 묻어나니 시린 가을빛 입니다.  

 

가을들꽃이 피어난 시골길을 비집고 들어서면 산새소리와 풀벌래 소리가 들려오고  

 

  

면식없는 시골 아낙의 손길로 다듬어진 화단속에는 옅은 물이 흐르고

그 속에 수련잎이 살며시 떠 있으니 영락없이 몽돌이 있는 가을정원이 됩니다. 

 

잘 다듬어진 전원주택 잔디위 빨간 편지함 속에까지 가을이 깊어지면

도시를 벗어난 한적한 시골에도 순백의 가을연가가 퍼져나갈 겁니다.  

 

   

이 가을은 흑백사진이 보여주는 단순함과 간결함으로 깊어지는 질감처럼

소리없이 하루를 타고 넘어와서는 나를 적시며 가슴에 파고들것이 틀림없는데 

  

가슴으로 담아내지 못하면 보이지않는 투명한 계절이기도 할테니  

화가는 가을을 가슴으로 보듬고는 붓과 물감으로 화폭에 풀어놓습니다. 

 

 

향수(鄕愁)-정지용시

넓은 벌 동쪽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곳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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