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논단] '샤워실의 바보'
위키리크스에서 드러난 우리 관료들의 수준
대학 때 가장 똑똑했으나 경쟁 없는 관료사회에서
헛똑똑이로 전락한 그들… 안보 맡길 수 있는가
대다수 국민은 정부 정책을 결정하는 고위 관리들이 똑똑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들 대부분은 일류 대학을 나와 그 어렵다는 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오래 몸담아 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웹사이트 위키리크스(WikiLeaks)가 최근 폭로한 미 국무부의 비밀 외교 문건을 보면 우리나라 관리들은 생각만큼 똑똑하지 않은 것 같다.
폭로 문건에 따르면 지난 2월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당시 외교부 제2차관)은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 대사에게 "중국의 신세대 지도부는 한국 주도의 통일 한국을 꺼리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다른 한국 관리들도 "중국이 앞으로는 일방적으로 북한 편을 들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러나 천 수석 발언 한 달 뒤 북한은 천안함을 폭침(爆沈)시켰고 중국은 그런 북한을 지금껏 철저히 감싸고 돌고 있다.
비밀 문건을 보면 천 수석 발언 5개월 전인 작년 9월 싱가포르의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는 제임스 스타인버그(Steinberg) 미 국무부 부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중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갖는 것도 체제가 붕괴되는 것도 원치 않지만 둘 중 하나를 택한다면 전자를 선호할 것"이라고 정확히 진단했다. 그는 또 "북한이 방어수단인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걸로 본다"고 말했다.
현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판단이 선행되어야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온다. 만약 이명박 대통령이 리콴유의 통찰력을 지녔거나 천 수석을 비롯한 외교안보 라인이 리콴유처럼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할 줄 알았다면 일찌감치 중국과 북한 김정일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대북 방어태세를 강화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 수재 소리를 듣던 고위 관리들이 왜 이처럼 '헛똑똑이'가 되었을까. 차동세 전 KDI(한국개발연구원) 원장은 경쟁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한다. 그의 대학동기들 가운데 가장 똑똑한 그룹이 고시를 거쳐 관리가 됐고, 그다음 그룹이 한국은행에, 그리고 제일 못한 그룹이 기업에 취직했다고 한다. 졸업 후 30여년 만에 동기들을 만나보니 똑똑한 순서가 뒤바뀌었다. 해외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을 이겨낸 기업 친구들은 현실감 있는 똑똑이로 성장했다. 반면 경쟁이 거의 없는 공직사회의 친구 대부분은 헛똑똑이로 변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대기업에는 중국인 뺨치는 언어 구사력에다 중국 현지 사정에 정통한 임직원들이 수천 명이 넘는다. 이에 비해 한·중 수교 18년이 지나도록 우리 외교부의 2000여명 외교관 가운데 중국어 가능자는 90명 미만이고 국장급 이상 간부진에 '중국통'은 전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이 이러하니 외교부의 대중(對中) 인식과 외교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민간 전문가를 고위 공무원으로 영입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공직사회는 아주 폐쇄적이라 영입해온 전문가들이 그곳에 뿌리내리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전 외교부장관의 딸 특혜 채용 의혹으로 '공정사회' 논란이 확산되면서 전문가 특채보다는 다시 구시대적 고시제도로 되돌아가자는 분위기다.
헛똑똑이 관료는 '샤워실의 바보(fool in the shower)'처럼 행동하기 쉽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Friedman) 교수는 "바보는 샤워할 때 뜨거운 물과 냉수를 번갈아 틀다가 망한다"며 관료들의 일관성 없는 갈팡질팡 정책 때문에 큰 사회적 낭비가 발생한다고 비판했다.
현 정부의 우왕좌왕하는 대북정책이나 연평도 피격 이후 시시각각으로 변하던 정부와 군의 반응을 보면 샤워실의 바보가 연상된다. 연평도가 화염과 연기에 휩싸이던 순간 TV 자막에는 '확전 자제'라는 청와대의 첫 메시지가 떴다. 그 뒤 국민 여론이 악화되자 네 차례나 말을 바꿨다. 이 말 바꾸기가 이 대통령의 뜻이 아니라면 청와대 헛똑똑이들이 샤워실의 바보짓을 한 것이다.
김정일·김정은의 추가 도발 야욕을 분쇄하려면 확실한 보복능력을 갖춘 공세적 방어시스템 구축이 필수적이다.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때까지 샤워실의 바보들이 사태를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도록 이 대통령이 냉철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 2010-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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