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창에 있는 거창고등학교. 한 학년이 서너 학급에 불과한 작은 학교지만 독특한 교육으로 전국의 학생들이 유학을 오기도 하는 명문 사학이다.
필자가 그 학교에 처음 가본 것은 22년 전 겨울.
당시 참교육의 모델을 찾던 '전교협'에서, 앞서가는 학교 사례를 배울 겸 전국간부연수를 그 학교에서 가졌던 계기로 해서였다.
그때 가장 인상 깊게 접했던 것이 '직업선택의 10계'였다. 타이틀이 '직업선택…'이긴 하지만 단순한 진로지도지침을 넘어 운영자의 교육관이 담긴 지표로 비쳤었는데, 역시나 그 이후 거창고의 교풍으로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10계'는 온통 상식을 거스르는 내용이어서 처음엔 고개를 갸웃했다가도 이내 무릎을 치게 되는데, 군소리 같은 설명을 붙여 전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급료와 일의 가치가 비례하지 않는 게 우리 현실이다. 하지만 물욕보다는 노동의 가치와 보람을 택하라는 의미로 읽힌다.
둘째,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사람들은 자기 분에 넘치는 자리를 선망한다. 막상 그 자리에 가면 한계부터 드러낼지언정…. 그러느니, 자기 힘에 맞는 일로 몫을 찾는 게 낫지 않을까.
셋째, 승진의 기회가 없는 곳을 택하라.
승진에 매이다보면 일의 보람을 놓친다. 지위가 주는 성취감보다 일 자체의 보람을 찾으라는 의미다.
넷째, 모든 조건이 갖춰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황무지야 말로 역량 발휘와 발전의 여지가 가장 열린 곳이다.
다섯째,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사람들이 몰리는 곳은 이미 끝물만 남은 곳. 내 몫은 부스러기뿐일지 모른다. 막차 탈 공산도 크다.
여섯째,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장래성도 남이 만든 현재로서의 전망일 뿐. 따라서 그것도 스스로 만들어 갈 일.
일곱째,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은 바랄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존경이란 권력에의 조아림이니 그것에 연연하는 것도 권력욕이다. 예수도 고향에서는 배척받지 않았던가.
여덟째,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가장자리가 조건은 야박해도 여지도 넓고 할 일도 많다.
아홉째,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하는 곳이라면 틀림이 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가화만사성을 부정할 이는 없다. 세속적 안위에 초연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 너머에 아무나 가지 못하는 신천지가 있다.
열째,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라.
위험한 도전일수록 대박 확률도 높고, 영광은 타산 없이 헌신하는 이의 몫이다. 진정이 지극하면 돌에도 꽃이 핀다.
이상의 계명들은 사실은, '창조적 소수'가 되라는 가르침이다. 스스로 가시밭길로 드는 도전이니 아무나 갈 수 있는 길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요즘 전례 없는 실업대란은, 모든 젊은이 들에게 '영웅적인 도전'을 요구한다. 이런 때 이 10계가 그들에게 힘이라도 되었으면 싶다. 오죽하면 '무르팍도사'의 공력이라도 빌리고 싶으랴.
"이 땅의 모든 '이태백'들이여, 용기백배해 난세의 영웅들이 되어라~ 팍팍!"
김병우 / 충북도교육위원 2009년 02월 16일 (월) 18:5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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