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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노인의 유서

酒樂人 2011. 12. 6.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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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잃고 혼자 살아가는 노인이 있었다.

젊었을 때에는 힘써 일하였지만 이제는 자기 몸조차 가누기가 힘든 노인이었다.

그런데도 장성한 두 아들은 아버지를 돌보지 않았다.

 

어느 날 노인은 목수를 찾아가 나무 궤짝 하나를 주문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집에 가져와

그 안에 유리 조각을 가득 채우고 튼튼한 자물쇠를 채웠다.

 

그 후 아들들에게는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아버지의 침상 밑에 못 보던 궤짝 하나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들들이 그것이 무어냐고 물으면 노인은 별게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할 뿐이었다.

 

궁금해진 아들들은 아버지가 없는 틈을 타서 그것을 조사해 보려 하였지만

자물쇠로 잠겨져 있어서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궁금한 것은 그 안에서 금속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난 것이었다.

 

아들들은 생각하였다.

 

'그래! 이건 아버지가 생 모아 놓은 금은보화일거야.'


 

 

아들들은 그때부터 번갈아가며 아버지를 모시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얼마 뒤 노인은 죽었고,

아들들은 드디어 그 궤짝을 열어 보았다.

 

그러나 깨진 유리 조각만이 가득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큰 아들은 화를 내었다.

 

"당했군!"

 

그리고 궤짝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동생을 향해 소리 쳤다.

 

"궤짝이 탐나냐? 그럼, 네가 가져라!"

 

둘째 아들은 형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적막한 시간이 흘렀다. 1, 2, 3.

아들의 눈에 맺힌 이슬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막내아들은 그 궤짝을 집으로 옮겨왔다.

"자식이 효도하려 해도 어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라는

옛 글을 생각하며, 아버지가 남긴 유품 하나만이라도 간직하는 것이

그나마 마지막 효도라 생각한 것이다.

 

아내는 구질구질한 물건을 왜 집에 들이느냐며 짜증을 냈.

그는 아내와 타협을 했다. 유리 조각은 버리고 궤짝만 갖고 있기로

 

궤짝을 비우고 나니,

밑바닥에 편지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막내아들은 그것을 읽다가 꺼억 꺼억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나이 마흔을 넘긴 사나이의 통곡 소리에

그의 아내가 달려왔다. 아들과 딸도 달려왔다.

 

글은 이러하였다.

 


 

첫째 아들을 가졌을 때,

나는 기뻐서 울었다.

둘째 아들이 태어나던 날,

나는 좋아서 웃었다.

 

그 때부터 삼십여 년 동안,

수천 번 아니 아마도 수만 번

그들은 나를 가슴조이며 울게 하였고,

그들은 또 가슴벅차게 나를 웃게 하였다.

 

그러나 이제 나는 늙었다.

그리고 그들은 달라졌다.

나를 기뻐서 울게 하지도 않고,

좋아서 웃게 하지도 않는다.


           내게 남은 것은,

그들에 대한 기억뿐이다...

처음엔 진주 같았던 기억...

중간엔 내 등뼈를 휘게 한 기억...

 

지금은 사금파리, 유리 조각 같은 기억...

 

그러나 아아,

내 아들들만은.. 

그들의 늘그막이 나 같지 않기를..

           제발 나 같지 않기를..

 

 

아내와 아들, 딸도 그 글을 읽었다.

 

"아버지!"

하고 소리치며 아들, 딸이 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아내도 그의 손을 잡았다.

 

네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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