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경제

경제 양극화보다 불공정이 더 문제

酒樂人 2011. 5. 9. 14:32

 

경제 주체들 담합과 도덕적 해이 극심해… 공정위가 제 역할 했으면 정부·재계 갈등 없었을 것
내년 선거도 복지 논쟁보다 경제 시스템이 쟁점 돼야

 

윤영관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4·27 재·보선 결과를 놓고 정부와 여권에 대한 많은 질책이 쏟아지고 대책들도 제시되고 있다. 대책을 내놓으려면 문제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이 갈수록 깊어가는 경제의 양극화(兩極化)를 그 원인으로 들고 있다. 소수의 거대 기업들은 '1조 잔치'를 벌이고 있는데 대다수의 유권자가 "그것은 당신네들만의 잔치일 뿐"이라는 생각을 굳히고 있다. 대기업들이 두부·고추장·된장·떡볶이 사업에까지 손을 뻗치고 잘나가는데, 중소기업들은 밀려나고 중간계층이 약화되고 있다. 지난 10년간 상위 20%의 소득은 55% 증가하고 하위 20%의 소득은 35%나 감소했다. 보수 신문의 사설들마저도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경제적 양극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불공정한 경제의 틀이 더 근본문제이다. 예를 들어 최근 불거진 부산저축은행그룹의 불법대출과 분식회계 사건은 우리 경제 시스템이 과연 공정하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깊은 회의를 던져주고 있다. 대주주, 경영진, 감독당국, 거액 예금주들이 서로 담합하여 도덕적 해이가 극심해진 모습이 1997년 IMF 위기 직전의 상황과 아주 닮아있는 것이다. 또한 정부 인사들과 재계 인사들 간의 이익공유제를 놓고 벌어지는 충돌이나 대통령이 재계 인사들을 만나 협조를 당부하는 모습들이 보도되고 있다. 이러한 보도들을 접하면서 그런 식으로 대응할 일들은 아닌데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무언가 본질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1980년대 초 이래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바람이 불면서 많은 사람이 정부는 무조건 경제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시장은 자기조정 능력이 있기 때문에 시장에 맡겨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2008년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인 미국에서 일어난 위기는 그러한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를 겉으로 내세우면서 커튼 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얼마나 반(反)시장적이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었다. 경제정책 결정자들은 자유시장 논리를 금융영역에도 적용하면서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감독을 소홀히 했다. 그 사이에 금융투자가들은 도덕적 해이에 함몰됐고, 민간 감독기구인 신용평가회사들마저도 평가대상 회사와의 담합구조 속에서 트리플A를 남발했다. 1997년 IMF 위기를 낳은 구조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경제주체 간의 담합과 도덕적 해이가 문제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위기들은 정부가 경제시스템의 작동과 관련해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다.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경제주체 간에 벌어지는 경제 게임이 공정하게 돌아가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작동시키면서 게임의 규칙을 집행하는 엄정한 심판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지금도 우리 사회에 유행하고 있는 '친기업' '반기업', '친노동' '반노동'이란 표현들은 경제철학의 빈곤을 드러내주는 말이다. 문제는 '친(親)'이냐 '반(反)'이냐가 아니라, 정부가 이들 주체에 대해 얼마나 '엄정하냐'인 것이다.

물론 과거 관(官) 주도 개발 연대 때 정부가 기업에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 식의 규제는 철폐돼야 한다. 그러나 경제 주체들 간의 공정한 게임의 틀을 만들어주고 규칙을 집행하도록 하는 역할은 강화되어야 한다. 그래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존재한다. 현 정부 초기부터 이 기관에 힘이 실려 그 기능이 강력하게 집행되어 왔더라면 정부와 대기업 간에 벌어지고 있는 갈등의 상당 부분은 불필요했을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공정 관행도 달라졌을 것이고, 이익공유제가 그렇게 큰 문제로 부각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대통령이나 측근들이 대기업 총수들을 직접 만나 사정하거나 으름장을 놓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경제시스템의 공정성에 대한 믿음이 강화되어 사회통합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고 경제형편이 어려워졌더라도 국민의 분노가 그처럼 폭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년은 총선과 대선의 해다. 아마도 경제 문제가 가장 큰 쟁점이 될 것이다. 그런데 한국 경제 시스템의 작동방식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없이 복지논쟁만 난무한다면 연목구어(緣木求魚)가 될 것이다. 공정한 경제게임의 규칙을 집행하면서 시장의 효율을 살려나가되, 동시에 사회통합을 이뤄나갈 구체적인 방법을 놓고 여야 간에 날카로운 공방이 벌어지는 선거가 되기를 희망한다. 결국 문제는 경제철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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