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동글

연등(燃燈)

酒樂人 2011. 5. 9. 14:23

서산 개심사에 지금 꽃불이 났다. 범종각 앞에 내걸린 오색 연등 곁으로 겹벚나무가 탐스러운 진분홍 꽃떨기들을 어사화(御賜花)처럼 늘어뜨렸다. 명부전 마당엔 희귀하게도 연둣빛을 띠는 청벚이 소담스러운 꽃 커튼을 드리웠다. 빨갛고 하얀 겹복사꽃, 만첩홍도와 만첩백도도 절집 여기저기 만발했다. 꽃들이 더디 온 올봄, 꽃절 개심사의 만행화(萬行花)들은 초파일을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피어 부처의 공덕을 노래한다.

▶꽃은 피기까지 고행의 세월을 견디기에 불가(佛家)의 온갖 수행, 만행을 상징한다. 등(燈)·향초·과일·차·쌀과 함께 부처님 오신 날 올리는 육법(六法) 공양에 든다. 이 여섯 공양물 중에 으뜸이 지혜를 뜻하는 등이다. 등은 번뇌와 무지로 어두운 무명(無明) 세계를 부처의 지혜로 밝혀 달라고 바친다. 어둠을 살라 욕심과 노여움과 어리석음, 삼독(三毒)을 지워 주십사 공양한다. 그래서 사를 연(燃) 자 쓰는 연등(燃燈)이다.

 

 

▶조선시대 초파일 연등놀이에선 사치 경쟁이 붙어 등을 옥으로 장식하기까지 했다. 가난한 사람들도 부자를 따라 하느라 구걸을 해서라도 연등을 장만했다. 옛 인도에서 부자들이 다투어 부처에 화려한 등을 올렸던 것처럼. 그러나 부자들의 등은 비바람 몰아친 밤 모두 꺼졌고 가난한 여인이 지극한 마음으로 켜 올린 등불 하나는 오래도록 꺼지지 않았다고 한다. 빈자일등(貧者一燈) 이야기다.

▶어느 석가탄신일, 시인은 절에 걸린 연등에서 거기 담긴 빈자일등의 마음을 본다. "없어진 어떤 등은/ 가난한 이의 가슴에 황금이 되어 박히고/ 울리고 고통받는 이/ 슬픔에 눈먼 사람 눈가로는/ 한 떨기 미소가 되어 타오르기도 하고/ …/ 오늘 다시 초파일/ 한 채의 절에 와/ 등을 만나보니/ 안 보이던 백열의 불꽃은 뜨거웁고/ 캄캄하게 배었던 어둠은/ …/ 밝아 있습니다"(홍신선 '오래전 종이로 등 하나 만들어').

▶초파일을 가리켜 연등절이라고 불렀듯 그제 서울 도심에 연등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5만이 참가하고 30만이 지켜본 축제였다. 사람들은 정성껏 만들어 나온 등을 앞세우거나 손에 들고 걸으면서 보다 밝고 따뜻한 세상을 기원했다. 내일 부처님 오신 날, 하루만이라도 등 하나 밝혀 드는 일점등(一點燈)의 마음으로 삼간다면 저마다 곁에 드리운 어둠이 몇 뼘은 물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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