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월 작고한 소설가 박완서의 집 거실에 앉으면 개울 건너 아차산 등산로가 보였다. 그는 묵상집 '님이여, 그 숲을 떠나지 마오'에서 등산로 풍경을 그렸다. 밤을 따러 아침에 들어가건 오후에 들어가건 해질 녘 숲을 빠져나올 땐 그들이 딴 밤의 분량이 대개 비슷하다고 했다. 거기서 올된 것과 늦된 것을 가리지 않는 신의 손길을 느낀다고.
▶박완서는 '꼴찌'를 재발견하고 그의 인권을 되살려냈다. 산문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는 70년대 나왔다 25년 뒤 복간됐다. "나는 여태껏 그렇게 정직하게 고통스러운 얼굴을, 그렇게 정직하게 고독한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그는 환호 없이 달릴 수 있기에 위대해 보였다." 어디 마라톤뿐일까. 교실·직장에서 그 덕분에 우리는 꼴찌를 향한 따스한 눈길을 회복했다.
▶지난 주말 유족들이 그가 남긴 현금 재산 13억원을 서울대 인문대 학술기금으로 내놓을 뜻을 밝혔다. 그는 죽기 전에도 가난한 문인들 많으니 절대 부의금 받지 말라고 했었다. 이태 전 봄 떠났던 서강대 장영희 교수의 유족들도 그해 9월 인세와 퇴직금을 모두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이분들의 기부금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에 해당한다. 박완서는 숙명여고 동기생인 소설가 한말숙에게 말했다. "그때(6·25전쟁) 나도 먹고살려고 담을 넘어가 쌀을 훔치기도 했어. 지금 생각하면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그에게 '보수냐 진보냐'고 물은 적이 있다. "전에는 내가 과격한 진보였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 나이와 함께 보수로 가는 것도 자연스럽습니다. 옳다고 믿는 것을 조금씩 수정하며 지켜가는 게 왜 나쁩니까?" 그는 또 "옛날에는 빨갱이로 몰릴까 봐 치사해서 말 못하고 살았는데, 요즘은 보수로 몰릴까 봐 말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라고 했다. 선거 때 누굴 찍겠냐 물으면 "당(黨)보고 찍진 않을 것 같아요. 사람 보고 찍을래요. 누가 나오는지는 모르지만요"라고 했다.
▶그의 49재(齋) 때 와인을 올렸다던데, 실은 소주를 무척 사랑했다. 자택에서 지인들과 데운 소주를 나눠 마시고 춤을 추었던 추억을 선물하기도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복국을 사주며 소주를 한 잔씩 정겹게 따라주던 손길이 선하게 떠오른다. 창밖을 멍하게 바라보는 일도, 마당에 날아온 새들에게 묵은 쌀을 뿌려주는 일도 '그냥' 좋다고 했었다. 13억 기부도 그냥 좋아서 한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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